웰메이드 음악의 대표 주자, 듀오 노리플라이no reply의 멤버 정욱재(a.k.a TUNE)님이 얼마 전 다녀온 스페인 여행 이야기를 민트페이퍼를 통해 연재합니다. (현재 1편만 완성됐으므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체 4~5편이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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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갑자기 떠났다. “bright #3″에 수록된 TUNE의 ‘상처’ 작업이 끝나고, 노리플라이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생겼다. 평소였으면 제주도나 국내 겨울 등산 종주를 했겠지만, 얼마 전 제주도에 한 달 정도 다녀왔던 터라, 이번에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30대로 접어들면서 20대에 하지 못해서 후회되는 일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사실 그 동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걸 꼽아보자면.
1. 유럽 배낭 여행
2. 어학 연수를 겸한 워킹 홀리데이
3. 해외 자원 활동

2번과 3번은 연령 제한 등 현실적인 이유로 불가능하기에, 1번이라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내가 꿈꿔 왔던 20대 초반의 풋풋한 여행은 아니겠지만, 트레킹과 등산을 겸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여행 당일 아침에…

사실 이 여행은 작업실 소파에서 자다가 깨어나면서 문득 결정했다. “유럽 가고 싶다. 스페인에 말이다! 산티아고!” 그리고 행동이 재빠른 나는 소파에 누운 그 상태로 스마트폰으로 항공권을 예약한다. 가격이 저렴한 것이 우선이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므로 경유는 환영한다. 나에게는 스톱오버가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이스탄불 경유,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 티켓 예약 완료!
 

다음날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이나 다녀온 후배를 불러내, 스페인 여행 속성 과외를 받는다. 반나절 동안 집중 스파르타 교육을 받던 중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도시들도 가고 싶다. 스페인 남부의 해변도 걷고 미술관도 가고 알함브라 궁전에서 쏟아지는 햇살도 만끽하고 싶어라!”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재빠르게 결정한다. (그러나 이미 여행 당일 날이 밝아왔다.) 스페인의 여러 도시를 이동하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격파하고 중간중간 트레킹을 하는 것으로 결정. 내 언젠가는 꼭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리라.

떠나는 날 아침인데, 결정된 건 왕복 비행기뿐이라니! 그래도 또 다른 후배 중 하나가 스페인 출장을 가서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에 있을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했기에, “1주일 정도 숙소는 해결!”이라는 위안을 해보았다. “일단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매우 주도면밀한 계획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배낭이 점점 무거워진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 여행용 기타도 가져가야 하나?’, ‘트레킹과 야영을 위한 장비는 어느 정도로 준비해야 하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부피가 큰 기타 대신 조그만 악보 노트를 챙긴다. 아웃도어 용품도 최소한으로 챙긴다. 텐트, 침낭, 매트, 등산화, 등산 자켓, 끝.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천 공항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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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가벼워 보이지 않잖아!;;



CHAPTER 1. 긴 여행의 시작, 바르셀로나

14시간가량의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입성했지만, 맙소사, 현지 시각은 밤 12시. 후배에게 추천 받은 바르셀로나 숙소를 출국 직전에 예약은 했지만, 새벽 체크인이란 한참 예쁜 꿈을 꾸고 있을 호스텔의 미남미녀들에게 예의가 아니기에, 공항 노숙을 하기로 한다. (맙소사 첫날부터…) 나름 값진 경험이라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미리 담아 온 영화 <보이후드>를 보며 꾸벅꾸벅 첫차를 기다렸다.

오전 6시, 공항과 도심을 잇는 전철을 타고 Passeig de Gracia 역에 내렸다. 숨 막힐 것 같은 아름다운 건물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나를 비춘다. 아 이것이 바로 스페인의 여유로운 아침! 바르셀로나에서의 첫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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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바르셀로네타La Barceloneta 해변, 고딕지구Gothic Quarter

빡빡한 일정의 여행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여행의 첫날을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현지에 출장 차 먼저 와있던 친구 역시 휴무였기에, 함께 해변 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우린 해변에서 앉아 햇살도 쬐고 근처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뭉그적거리며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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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광장Place de Catalunya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여유로운 주말 아침 마라톤을 즐기는 사람들을 마주했다.
 

생소한 곳에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광장을 가보자. 그 지역의 아이덴티티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니까. 뿐만 아니라 광장은 대부분 중심부에 있다 보니, 대략적인 동선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바르셀로나 도심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해변과 맞닿게 된다. 우리는 람브라Rambla 거리를 따라서 해변을 향해 걸었다. 카탈루니아 광장에서 약 10분 정도 걸으면 곧 콜럼버스 기념비인 미라도르 데 콜롬Mirador de Colom과 요트장이 나오고 저 멀리 우측으로는 몬주익 언덕Montjuic Hill, 좌측으로는 바르셀로네타La Barceloneta 해변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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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며 늦은 아침 겸 빠른 점심을 먹었다. 스페인하면 타파스! 싱싱한 해산물로 이루어진 타파스와 기본 빵들, 그리고 스페인의 맥주와 커피를 마구 들이킨다. 벌컥벌컥! 특히 이 오징어튀김 형태의 타파스는 몹시 짜지만 눈 감으면 생각날 정도로 마성의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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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는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만끽하려는 우리와 같은 계략을 가진 사람들로 적당히 붐볐다. 다들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우리처럼 햇살을 즐기며 따듯한 지중해를 지긋이 응시하기도 한다. 마침 내가 앉아 있던 곳 근처에서 로컬 집시형이 영화 <인사이드 르윈>의 곡을 연주 한다. 곧 그의 기타와 하모니카 소리가 내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는데… 버스킹 집시형의 사진을 찍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점심으로 먹은 타파스가 어느 정도 소화가 될 무렵, 우리는 바르셀로나 구시가지를 구경하기 위해 고딕 지구로 향했다. 운치 있고 고즈넉한 골목골목을 누비다 피카소 미술관을 격파할 계략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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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오래된 상점들이 즐비한 고딕지구를 걷다보면 카탈루냐 음악당Palau Musica Catalana과 바르셀로나 대성당Barcelona Cathedral, 피카소 미술관Museu Picasso de Barcelona 등을 만날 수 있다. 길은 좁고 울퉁불퉁한 돌바닥으로 걷기에 살짝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시킬만한 고즈넉함이 존재한다. 짧은 시간 그저 오래된 동네 골목을 걸었을 뿐인데도 대략 4만 7천 곡 정도의 악상이 떠올랐다. 한국에도 이런 골목들이 있으면 좋으련만… 개발에 열광해 큰 도로를 내고 어지러운 간판들을 설치하기에 바쁜 것 같아 몹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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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de Barcelona)

피카소 미술관에는 초창기 시절 그의 아주 정직한 화풍의 연습작들 부터 ‘피카소’하면 흔히 떠 올릴 수 있는 초현실주의 입체파 작품들까지, 점점 완성되어가는 그의 작품 세계를 시간 순으로 감상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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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museupicasso.bcn.cat
*피카소의 비교적 초기 작품들.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그의 화풍이 아닌 이런 정직한 그림들을 십대 학생시절의 피카소도 그렸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렸다.

전시관 후반부로 갈수록, 한 장면을 수십 가지 버전으로 표현해내는 그의 집착에 가까운 내면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즈Diego Velázquez의 시녀들Las Meninas을 응용한 연작을 보고 있노라면 피카소 형의 집착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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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ommons.wikimedia.org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에 있는 벨라스케즈의 시녀들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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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museupicasso.bcn.cat / www.wikiart.org
*원작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피카소의 시녀들.
 

틀에 박혀 있는 당대의 미술을 깨부수려는 그의 노력은 결국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 음악인으로 말하자면, 그는 전자기타를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못해 무대 위에서 불태워 버렸던 지미 헨드릭스다. 단순히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단계에 올라 선 예술가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고로 난 안될 거야..)



카사밀라Casa Mila, 카사바티오Casa Batllo

출장에 지쳐있던 친구를 보내드리고, 나도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해가 질 무렵 저녁도 먹고 바르셀로나의 자랑, 곳곳에 즐비한 아름다운 야경 또한 감상 할 겸(사실은 근처 마트에서 스페인의 싸고 맛있는 와인을 왕창 사기 위해)해서 좀비마냥 거리로 나왔다. “워어어… 와인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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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저녁에 감상할 야경은 스페인 건축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 그 중 카사밀라Casa Mila와 카사바트요Casa Batllo를 감상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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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카사바트요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일 정도로 신비롭고 독특한 건축 양식을 띄고 있는데, 기존 건축 디자인과는 확연히 다른 그만의 유기적이고 매우 독창적인 아우라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생소한데, 20세기 초반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오죽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두 곳 모두 입장료를 지불하고 내부를 감상할 수 있는데, 이 중에 카사바트요를 관람하기로 했다. 여담으로 카사바트요는 현재 글로벌 제과 기업인 츄파춥스에서 소유하고 있다는데 입장료가 지역에서 운영하는 다른 관광지들에 비해 살짝 비싼 감이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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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독특한 건축 양식은 바르셀로나 근교에 위치한 몬세라트Muntanya Montserrat 바위산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며칠 뒤에 방문하게 될 몬세라트 트레킹을 더더욱 기대하며 오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

대략 바르셀로나에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호스텔에 비치되어 있는 바르셀로나 소개 책자를 뒤적거리며, 카탈루냐 국립미술관, 성 가족 성당,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몬주익 성은 꼭 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꿈나라로 스르륵.

꿈에 권순관이 나왔다.
그는 내게 얼른 돌아오라며 나지막이 흐느끼고 있었..
 

노리플라이 정욱재의 스페인 탐방기 1편 끝.
2편으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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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페이퍼 / 글, 사진_정욱재 편집_진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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