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음악의 대표 주자, 듀오 노리플라이no reply의 멤버 정욱재(a.k.a TUNE)의 스페인 여행 이야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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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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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여행을 하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정직한 생활 패턴에 몸이 금방 익숙해진다. 뮤지션의 일상이란, 조용하고 감성에 젖어드는 밤이나 새벽에 주로 이루어진다. 10년 가까이 그 이유를 찾으려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냥 예술가들은 대부분 이러려니 하며 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악과 거리를 두고 학업에 매진했던 시기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얼리버드로 살았다. 참 신기해.

자기 전 가볍게 와인 한잔을 하며 여행 책자와 낮에 구입한 도록들을 뒤적거리다보면 금방 스르륵 잠이 든다. 서울에서는 한참을 이불과 싸움하다 지쳐, 어지러운 타임라인을 멍하니 끈임 없이 봐도 결국 잠을 못 이루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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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기대했던 가우디의 건축물 중, 성 가족 성당에 가기로 하고 일찍이 길을 나섰다. 숙소가 있는 Passig de Gracia에는 아침을 맞이하는 카페와 빵집이 많다.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카페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출근을 앞둔 사람들을 구경한다. 그렇게 매일 아침 이방인 여행자의 여유를 즐긴다. 며칠 간 난 이렇게 숙소 근처 카페에서 “Por favor, café!(커피 주세요.)”로 하루를 시작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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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족 성당(Sagrada Famila)
바르셀로나 곳곳에 스페인이 자랑하는 건축가 가우디의 작품이 있다. 그 중에 가장 기대했던 건 바로 성 가족Sagrada Familia 성당이다. 1882년, 건축을 시작해 아직까지도 짓고 있는 이 거대한 성당은 가우디의 스승 비야르로부터 설계를 이어받아 1926년 가우디의 사망까지 상당 부분의 그가 설계를 진행해 왔다. 그 후 또 다른 건축가들이 위대한 선배의 바톤을 이어 받아 2026년 가우디 사망 100주년을 기념으로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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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관광지나 유적지를 방문할 때 투어 신청을 한다.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걸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어가 작품을 음미보다는 정보 전달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단체로 빠르게 이동하며 작품을 스쳐지나가는. 그래서 나는 미리 온라인에서 관광지나 작품에 관한 정보를 찾아 본 후, 현장에서는 혼자 꼼꼼히 관람하는 편을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지인들과 함께 할 때면, 느리게 이동하는 내가 답답해서 다들 분통을 터트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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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규모의 첨탑 내부를 올려다 볼 수 있는데, 마치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 같다. 상당히 높은 데다가 기하학적인 문양과 유기적인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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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는 건축 과정을 기록한 박물관이 있다. 초기 모습부터 현재 그리고 완공 후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확인할 수 있고, 세부적인 조각이 전시되어 있어 디테일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각 파트의 조각을 만들고 있는 작업실도 있어서 제작 과정을 유리문 너머로 볼 수 있는 게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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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효율적으로”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건축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천천히”, 효율보다는 “역사와 철학을 예술적인 측면으로 표현하는 것”에 상당히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그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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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으로 나와서 왼쪽으로 가면 오두막 같은 작은 별관이 있는데, 여기에는 가우디가 성당을 건축할 당시 사용했던 설계 사무소와 아이들을 교육했던 교실이 있다. 가우디가 사용한 책상과 의자, 어지럽게 놓인 설계 도면에서 생전에 성당 건축에 열정을 쏟아 부었을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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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족 성당의 재미있는 점은 정문과 후문의 조각 양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100년 이상의 건축 과정에서 건축가와 조각가가 바뀌면서, 양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문의 조각은 사실 묘사와 유기적인 형태에 집중한 19세기 20세 초반의 느낌이 많이 있고, 후문의 조각은 비교적 각진 형태의 현대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 있다. 하지만 정문과 후문 모두 성경을 기초로 예수의 탄생과 수난을 의미하는 건 같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비교하며 보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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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족 성당을 관람하고 나오자 이미 오후도 훌쩍 넘어버렸다. 1일 1관람을 목표로 하기엔 바르셀로나에는 훌륭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아서, 늦게까지 열려있는 곳을 찾았다. 마침 숙소 근처에 있는 카탈루냐 현대미술관Barcelona Museum of Contemporary Art이 비교적 늦은 시각까지 개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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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utat Vella 지구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주위는 고딕 지구만큼이나 골목골목 유럽의 정취가 느껴진다. 람블라 거리 초입에서 건물들의 작은 틈 사이로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구글맵을 켜두지 않으면 쉽게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싶다면 데이터 충전과 지도 앱은 필수인 것 같다.

장기간 여행 시에는 국내 통신사의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이번에는 현지에서 유심을 사서 데이터를 충전했다. 통신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비용은 대략 1.5기가에 20유로 정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MAC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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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macba.cat
 
선배들의 잘 보존된 작품을 마음껏 향유하며 자란 이곳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 몹시 기대됐다. 미술관 로비는 자유로우면서도 단정하고 선의 인테리어를 잘 살린 구조였다.

그 동안 국내외 여러 미술관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미술관에 상당히 오랜 시간 머문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 공간뿐 아니라 휴식 공간 역시 매우 중요하다. MACBA 경우, 긴 선형 구조의 로비를 휴식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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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섹슈얼리티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표현했던 Carol Lama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 미술의 비주류 영역을 확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초기부터 말년까지 꽤 방대한 작품들이 시간 순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섹슈얼리즘을 바탕으로 사회를 풍자하는 동시에 일상적인 시각을 끈임 없이 탈피하려는 아티스트로서 그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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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스페인 대부분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No Flash 모드에 한해서 사진 찍기를 허용한다. 단, 장소마다 방침이 다를 수 있으니 촬영 전에 확인하도록 하자.
 
2층에는 우리가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사물과 담론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The Immaterial Legacy’ 기획전이, 그리고 3층에는 미술의 개념을 분석하고 언어적 예술성을 탐구했던 1960~70년대 정기 간행물, “Art and Language”에 대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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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의 세련된 인테리어 너머로 펼쳐진 오래된 건물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면서도 매우 신선했다.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과의 조화를 위해 단정함에 중점을 두고 미술관 건물을 설계한 느낌이다. 문득 우리의 경복궁과 광화문 주위, 인사동 골목골목에 새로 들어서고 있는 건물들이 떠오르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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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현지인들이 어떻게 예술을 즐기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론 일부겠지만) 예술 그 자체를 느끼기 위해 미술관을 찾기 보다는 그것을 즐기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 바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고는 한다. 그렇게 많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느끼기보단 그저 빠르게 스치며 지나간다.

일본의 어느 미술관에서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사람들이 손에 휴대폰이나 카메라가 아닌 노트와 연필을 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숙제 때문인지 종종 무리를 지어 오는 어린 아이들 역시 저마다 그림 앞에 앉아 스케치를 하거나 메모를 하고 있었다. 내가 볼펜을 딸깍거리자 미술관 직원이 다가와서 조용히 수첩꽂이용 작은 연필을 주고 갔다. 타인의 감상과 사색의 시간을 무엇보다 배려하기 위한 모습에서 예술품을 대하는 그 나라의 태도를 느낄 수 있다.
 

Day 3

어제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오늘도 그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따라서 한국 아저씨들의 유니폼인 북쪽 얼굴 자켓을 입고 후드를 푹 덮은 채 길을 나선다. 평소 우산을 쓰기보단 이렇게 방수가 좋은 자켓을 입는 편이다. 유럽에서는 이 정도 비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여하튼 비가 오는 날뿐 아니라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역시 대비해서 자켓을 돌돌 말아 가방 안에 넣어둔다. 작은 것도 짐이 되는 여행에서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
 
카탈루냐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Arte de Catalunya)
스페인에는 상당한 규모의 미술관이 두 개가 있다.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과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Museo Nacional d‘Arte de Catalunya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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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museunacional.cat
 
프라도 미술관이 과거 스페인의 자부심이라면,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은 카탈루냐 지역만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예술 컬렉션을 전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동시에 프라도 미술관 못지않은 높은 작품 수준과 방대한 양을 자랑하며, 20세기 초반 만국 박람회 전시회관을 개조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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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 Espanya 역에 내리면 광장과 함께 Torres Venecianas라는 거대한 두 개의 탑이 보인다. 그 사이로 걸어가면 매일 밤 몬주익 분수쇼가 벌어지는 분수와 함께 언덕 위로 범상치 않은 거대한 건물이 보이는데, 이게 바로 카탈루냐 국립미술관이다.

몬주익 지구를 방문하고 바르셀로나의 야경을 감상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국립미술관 앞 전망대를 찾는다. 높은 위치에 있기도 하고, 매일 밤 환상적인 분수쇼도 펼쳐지니까. 하지만 때마침 보수 공사 중이란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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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앞 전망대에는 한국의 위대한 뮤지션의 방문을 축하하기 위해 로컬 형의 클래식 기타 버스킹이 펼쳐지고 있었… 하하하

미술관은 크게 세개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층에는 로마의 미술품과 중세의 미술, 2층에는 르네상스 이후의 근현대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다. 나는 중세 고딕 미술관부터 하나씩 격파하기로 하고 평소처럼 꼼꼼히 보고 있자니… 맙소사, 그 양이 너무 많아서 관 하나도 제대로 못 볼 것 같아 평소보단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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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에는 성경을 기초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예술의 영역은 근대에 오기 전까지는 신을 찬양하는 수단에 상당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조금은 수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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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미술 교과서에서나 보던 역사적인 그림 앞에 설 때면 찌릿찌릿 전율이 온다. 오오, 내가 이 작품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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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근현대관으로 넘어가면 신에 대한 찬양이 아닌 인간 본연의 예술성을 펼치기 시작하는 작품들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카탈루냐 지역을 대표하는 당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곳에 모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Juli Gonzalez의 Shouting 시리즈, 그 유명한 자전거와 자동차를 타고 있는 Ramon Casas의 작품들, 피카소뿐만 아니라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들까지. 미술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이 호강하는 호사를 하루 종일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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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미술에는 위대한 제국의 영광과 그것이 저물어가면서 내부적으로 겪었던 갈등의 소용돌이가 묻어있는 것 같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기법들(동서양, 때로는 아프리카 양식까지의 기막힌 조화)을 사용하여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몬주익 언덕에서의 야경은 바르셀로나에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한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집들은 작은 불빛들을 뿜어낸다. 야경을 벗 삼아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이어폰에서는 범프 오브 치킨Bump of Chicken의 “Orbital Period” 앨범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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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와인의 천국이다. 기차를 타고 몇 시간씩 달려도 광활한 대지 위에 줄지어 있는 포도나무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동네 마트에만 가도 굉장히 싸고 질 좋은 와인들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매일 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마트에 들른다. 진열대에 줄지어 있는 와인들을 보니 금세 여행의 피로가 달아난다. 신기하게도 마트에 10유로가 넘는 와인이 별로 없다. 5유로 전후 가격대가 많은데,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훌륭하다.

3유로짜리 와인을 홀짝거리며 숙소 침대에 누워 여행 책자들을 뒤적거린다. “내일은 어디에 갈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민을 한다. 문득, 한국 편의점에서 만원, 이만원을 주고 사먹었던 수많은 와인 병들이 떠올랐다. 분노에 차오른 채 잠이 들었다.
 
 
스페인 탐방기 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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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페이퍼 / 글, 사진_정욱재 편집_진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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