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음악의 대표 주자, 듀오 노리플라이no reply의 멤버 정욱재(a.k.a TUNE)의 스페인 여행 이야기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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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Bye Barcelona

Day 4

여행 중에는 이상하게 평소엔 전혀 안 하는 군것질을 하게 된다.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이 걸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매일 탄산음료와 단것들을 찾게 되는데… 스페인에는 이런 여행자들의 욕구를 200% 충족시켜줄 만한 무시무시한 군것질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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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북숭이 손을 제공해준 유모씨에게 감사를
 
스페인을 다녀오신 분들은 충분히 공감하리라. 아침부터 이 기름진 츄로스를 엄청나게 단 초콜릿 티에 찍어먹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곧 자신도 그렇게 되어 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그 질척한 초콜릿을 후루룩 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페인의 음식은 몹시 달고 짜지만 눈 감으면 자꾸 생각나.
 
몬주익성Montjuïc Castle

카탈루냐 국립박물관을 방문하며 거닐었던 몬주익 언덕을 오늘은 제대로 오르기로 한다. 몬주익 언덕을 만끽하려면 몬주익성을 방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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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입장권 판매 데스크 직원이 뭔가를 묻는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못 알아듣고 지나치려고 하니, 마침 뒤에 있던 어린 한국인 커플이 만 29세 미만이나 학생은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며 내게 친절을 베푼다.
“서른둘입니다.”
“네…”

그렇게 기분 좋게 Adult 티켓을 구입 한 후 오래된 성벽을 따라 성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작은 광장이 나오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구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안내 책자를 보니 종종 광장에서 이렇게 한시적인 전시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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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위로 올라가면 탁 트인 광경이 펼쳐진다. 그 아래로는 바르셀로나 시가지전경, 지중해 연안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들 몬주익성 옥상의 낮은 돌담에 앉아 아름다운 바르셀로나 전망을 벗 삼아 햇살을 만끽 한다. 나 역시 그곳에 앉아서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며, 전원을 on/off했던 휴대폰 유심칩 번호를 몰라서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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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도중 구입한 현지 유심칩 번호를 분실하면 매우 곤란하니 꼭 메모해서 다니길 바란다. 또한 누누이 들었던 것처럼 유럽 여행에는 국제학생증이 여러모로 유용하다. 대부분 관광지에는 할인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과거에 유럽 여행의 꿈을 안고 무작정 만들어 놓았던 내 국제 학생증은 이미 서랍 속 화석이 된지 오래다.
 
후안미로 미술관Joan Miró Foundation

몬주익 지구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앞서 방문했던 카탈루냐 국립미술관뿐 아니라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결승 라인을 끊었던 올림픽경기장Estadi Olímpic de Montjuïc(황영조 선수의 동상이 있다), 후안미로 미술관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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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fundaciomiro-bcn.org
 
스페인을 대표할만한 화가로는 1편에서 언급했던 피카소Piccaso와 벨라스케즈Velasquez, 그리고 고야Francisco Goya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성격이 강했던 이곳 카탈루냐 지방 사람들은 카탈루냐인 고유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를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한명이 후안 미로이다.

후안 미로 미술관은 1975년 그가 사비를 털어서 설립한 재단이자 젊은 미술가들의 기회의 장이다. 따라서 <밤의 여인>, <아침 별> 등 미로의 수많은 대표작뿐 아니라, 지역에서 주목받는 신인들의 전시도 진행된다. 오디토리움에는 미로의 생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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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fundaciomiro-bcn.org
 
후안 미로는 드로잉과 스케치, 페인팅만큼이나 많은 조형물을 남겼다. 미술관 야외 정원과 옥상 곳곳에서 그의 조형물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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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술관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조형물은 각각 저마다의 랜드마크를 이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소년 같은 미로의 동심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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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 Chicago, 시카고 / Design for a monument, 밀라노
 
바르셀로나 시가지를 배경 삼아 산책하듯 몬주익 언덕을 내려온다. 오를 때는 버스를 타더라도, 내려갈 땐 걷는 걸 추천한다.

숙소가 있는 도심 한복판으로 돌아오니 날은 이미 어둑어둑, 동네는 조용하다. 이유인즉슨, 바르셀로나와 아틀란티코 마드리드의 국왕컵 경기가 진행될 예정. 평소 같으면 람블라 거리에 젊은이들로 왁자지껄할 텐데, 다들 누캄프Camp Nou 경기장에서 역사적인 경기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사실 유럽 축구 리그에 매우 열광하는 터라, 경기 관람을 몹시 고민 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저기 현지에서 마주친 상남자들은 며칠 전부터 이날만을 기대하며 들떠있었고, 마침 표 값도 상상 이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경기 시작 2시간 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나에게 이미 현지에서 경기를 보고 온 친형과 친구들의 문자가 나를 미치게 한다.
“메시와 수아레즈, 네이마르를 만나고 오라고! 지금 너와 같은 동네에 있잖아!”
“경기를 안 보고 오는 건 바르셀로나에 다녀왔다고 할 수 없어!”
“평생을 후회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 테냐?!”

결국, 다음날 본격적인 몬세라트 트레킹을 앞두고 있는 나는 오늘밤 준비해야 할 것이 몹시 많기에 패배자의 삶을 살기로 한다. 언젠가는 위대한 축구 신의 발재간을 직접 보리라…

 
첫날 나를 반겨준 친구의 출장 마지막 날을 기리기 위해 바르셀로나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빠에야Paella 레스토랑을 찾았다. 사실 여행을 가면 기피하는 레스토랑 1순위는 바로 한국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는 곳들인데, 여기가 그런 곳일 줄이야…

한국인지 스페인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정취가 풍겨온다. 테이블의 8할을 차지한 한국 젊은이들의 수다는 지금 홍대나 강남 어느 스페인 요리집에 와있는 기분을 마음껏 느끼게 해준다.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분노에 가득 찬 상태로 먹물 빠에야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역시, 몹시 짜지만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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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에야는 쌀을 이용해 만든 리조또 형태의 스페인 전통 요리다. 해산물, 닭, 소고기 등 다양한 토핑을 사용한다.
 
내일 본격적인 트레킹에 앞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창밖을 보니, 경기장에 갔던 무리들이 좀비마냥 도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상남자들의 승리의 노래를 들으며 부들부들 잠에 빠져든다.
Un crit valent
Tenim un nom que el sap tothom:
Barca, Barca, Barca!

– 바르셀로나 FC 응원가 ‘Cant del Barça’
 
이날 국왕컵 8강 경기는 토레스와 네이마르 등의 대단한 활약을 바탕으로 쫒고 쫒기는 접전이 펼쳐졌다. 결국 2명의 선수가 퇴장 당하는 박빙의 전투(?) 끝에 3:2로 바르셀로나가 승리. 근래 들어 손꼽히는 명경기가 펼쳐졌다고 다음날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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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5

몬세라트로 출발

여행을 떠나면서 혹시 모를 트레킹에 대비해 등산 용품과 야영 장비를 좀 챙겼다. 하지만 취사를 위한 캠핑용 가스는 기내반입이 불가능해서 현지에서 구매해야만 했다.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등산 스틱도 안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필요 물품을 구매하고 바로 몬세라트로 가는 기차에 오르기로 했는데… 맙소사, 없다. 없잖아! 왜 없지?? 한국에선 편의점에만 가도 있는 캠핑용 가스가 마트 어디에도 없다. 결국 숙소 사장님과 출장 차 온 친구가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 물어서 대충 있을법한 백화점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역시 없다!

“하.. 어쩌지? 트레킹하는 며칠 간 빵 쪼가리만 먹으며 지내야 하나?!”라며 절망 할 때 쯤 영어가 가능한 백화점의 젊은 점원이 친절을 베푼다. “이 근처에 바르셀로나 최대 아웃도어 매장이 있어, 친구!” 고마움을 뒤로 하고 마구 뛰어가서 캠핑용 가스를 쟁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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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대한 아웃도어 스토어의 한국 진출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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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유로 정도의 이 미물을 얻기 위해 오전과 이른 오후를 모두 허비한 나는 멘탈이 붕괴되기 직전에 이른다. 너덜너덜해진 나를 위해 오늘 돌아가는 친구 녀석이 밥이나 먹고 가라며 근처 가게로 이끈다. 우린 그렇게 마지막 늦은 점심을 끝으로 헤어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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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출신인 유모씨는 여기 아웃도어 매장에서는 총도 판다며 몹시 흥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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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씨가 앞으로의 내 여정을 축복하며 몬세라트 등산 지도와 자신의 망원경을 선물했다. 성능 테스트를 위해 남의 집 아파트를 훔쳐보았지만 아쉽게도 상상했던 그런 광경은 없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가볍지 않아 보이는 배낭을 메고, 매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기차를 타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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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빠져나가 펼쳐지는 이국의 시골 풍경을 보니, 나의 지난 여행지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다. 적지 않게 해외 여행을 다녔지만, 일주일 이상을 넘겨 본 적은 없었다. 20대 중반 즈음에 하와이 친구 집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던 것이 가장 긴 여행이었다. 또 해외에서의 트레킹은 한국에서 걸었던 길과 올랐던 산 이상으로 기대했던 것이기도 하다. 지금 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에 크게 설레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수록 동경해 온 도시 바르셀로나가 내게서 멀어져 간다. 누구에게나 평생 갈망하는 여행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든 아니면 꿈에서 그리기만 하는 파라다이스든 말이다. 내게 스페인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궁극의 건축과 미술에 다가가려 했던 정열과 열정의 도시를 경험하고, 소년 시절 클래식 기타 악보 속 콩나물들로만 접했던 알함브라 궁전이 내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비록 일주일 남짓한 짧은 방문이었기에, 딱 그만큼 기대와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한 것이라 담담히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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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오르며 스페인과 관련된 여행 팟캐스트를 찾아 들었다. 여행을 앞둔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리고 이제 이곳을 떠나며 바르셀로나를 주제로 한 팟캐스트를 들어본다. 같은 방송이지만, 며칠 사이에 이걸 받아들이는 내 자신이 달라졌다.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은 정말 아름다워요!”
“바르셀로네타 해변 어딘가의 골목에 처음으로 접어들었던 낭만적인 순간이 떠오르네요!”
진행자의 회상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내 여행기를 읽는 누군가도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좋았던 기억을 들춰보지 않을까.

여행에서는 일상의 수많은 감정을 방관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겹겹의 추억이 쌓이면서 거칠었던 파도가 잠잠해지는 것을 느낀다.
 
 
PS. 스페인 여행기를 총 3편으로 마무리하려 했던 제 오만함을 반성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석사 논문 때 좌절했던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매주 한편씩 연재해서 4월 중으로는 끝내려고 심각하게 노력 중입니다. 부디, 노리플라이의 싱글 작업에 열중한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글쓰기를 미루는 저를 용서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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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페이퍼 / 글, 사진_정욱재 편집_진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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