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 음악의 대표 주자, 듀오 노리플라이no reply의 멤버 정욱재(a.k.a TUNE)의 스페인 여행 이야기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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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플라이 싱글 작업으로 인해 5탄이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Andalucía 지방으로!
Day 8

세비야Se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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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La panadella라는 마을에서 물어물어 버스와 기차를 타고 간밤에 겨우 사라고사Zaragoza 에 도착했다. 사실 리히다Lleida에서 바로 세비야로 이동해도 되지만 낯선 도시에 하루 머물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다. 하지만, 일정에 쫓겨 결국 잠만 자고 아침 일찍 세비야행 기차 렌페renfe에 몸을 싣는다.

스페인에 다녀오신 분이라면 잘 아시리라. 렌페 예약의 극악무도한 복잡함을. 사실 주도면밀한(여행기 1편을 보시면 충분히 이해할…) 여행자인 터라, 바르셀로나에서 몬세라트로 떠나기 전 1차로 렌페 예약을 시도했다. 귀찮음의 대마왕이라 한국에서도 코레일 예약은 무시하고 바로 역으로 가는 편인데, 렌페는 예약과 현장구매 가격 차이가 두 배 정도라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렌페 사이트에서 (나에게는) 그림과도 같은 글자들을 뚫고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실패! 인터넷 창은 렌페 예약 방법을 설명하는 한국 블로그로 도배가 된 후였다. 블로그 주인장들께선 “렌페 예약, 그리 어렵지 않아요!”를 외치고 있었다. 나름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난 멍청하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고 결국 현장 예매를 한다. 인터넷보다 훨씬 비싼 75유로를 지불하고 말이다. 눈물을 흘리며 세비아행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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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쾌적한 이 기차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의 포도밭을 뚫고 세비야로 향한다. 한국에선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광활한 대지와 저 멀리 보이는 스페인의 높은 산자락을 감상한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게 마련이다. 내 경우는 시종일관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저기에다 텐트치고 싶다!”

낭만적인 캠핑 사이트가 천지에 널려있다. 어디든 도심을 벗어나면 기름진 들녘과 탁 트인 초원이 넘실댄다. 그렇게 넋을 잃고 천해의 캠핑 사이트를 바라보며, 오후가 다 돼서야 세비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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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약 2박을 할 계획, 일단은 기차 타고 오면서 예약한 숙소로 향한다. 해외여행할 때 주로 익스피디아Expedia라는 어플을 이용하는데, 해당 지역의 지도를 바탕으로 호텔을 가격대별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처럼 호스텔에 머무를까도 했지만, 뜨거운 욕조에서 여독을 풀고 싶어 저렴한 1인용 호텔을 예약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바르셀로나 보다는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다.

바르셀로나 고딕지구처럼, 아니 그보다 3.7배 정도 더 좁고 오래된 골목에 자리 잡은 숙소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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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무척 오래된 건물이다. 로비와 실내도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고, 복도는 가끔 여행 프로그램에서 봤던 것처럼 중앙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구조다. 넉살좋은 호텔 지배인에게 딱 나만큼의 짧은 영어로 환대를 받고 키를 건네받는다. 짐을 풀고 뜨거운 욕조 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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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의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광장으로 나선다. 겨울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따사로운 햇살이다. 기차로 4시간 이동했을 뿐인데,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북부와는 다르게 상당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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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www.doopedia.co.kr
 
지리적으로 비유럽권의 문화와 인접해 있는 까닭에 곳곳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건축 양식을 접할 수 있다. 또 역사적으로 오래된 건물들도 즐비하다. 바르셀로나가 근현대의 미를 품고 있다면 이곳은 중세와 그 이전 도심의 정취를 지니고 있다.

광장과 도심 골목으로 ‘꽃보다 할배’에서 봤던 마차가 타각타각 돌길을 누비며 리듬을 만든다. 무수히 많은 테라스는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스페인의 도시를 설명하고 있는 담벼락 아래에 앉아 복잡한 생각들을 떨쳐내며, 더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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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을 보며 “아, 유럽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분노에 차오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플라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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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곳을 다녀간 친구가 추천해 준 플라멩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랏, 오늘은 여기 휴무일이란다. 하지만 세비야에는 무수히 많은 플라멩고 공연장이 있다.

근처에 있는 기타의 집Casa de la guitarra라는 플라멩고 공연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플라멩고의 3대 요소인 춤, 노래, 기타(반주) 중 수준급의 기타 연주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표를 구매한다. 비행기 안에서 스페인 관련 여행 팟캐스트를 열심히 들었는데, 그 중 손미나 누님께서 벅차오르는 말투로 소개했던 터라 플라멩고 공연을 몹시 고대했다.

빠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리듬 속에서 현란한 기교를 선보이는 기타 연주, 원색의 화려한 주름치마를 입고 격렬한 발놀림과 몸짓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무용수의 춤, 그리고 거칠고 깊은 목소리로 영혼을 뒤흔드는 노래. 스페인 남부의 따가운 햇살 아래 마지막 발길을 내디뎠던 집시들의 피 끓는 한이 담긴 플라멩코(flamenco)는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렬한 개성을 지닌 전통 예술이다. -스페인 플라멩고, 네이버 캐스트, 황윤기-

긴장되는 마음으로 공연을 기다리며 직원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혹시 공연을 보며 술을 마실 수 있나요?”
“물론이지, 플라멩고는 술과 함께!”
공연장 앞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와인과 맥주를 주섬주섬 꺼내고, 공연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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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기타가 나의 침샘을 자극 시킨다. 수염이 얼굴 절반을 가린 기타를 연주하는 훈훈한 청년은 메탈리카와 푸파이터스 형들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록스피릿을 가졌다. 그 못지않게 정열적인 몸짓으로 무대를 박살내는 아주머니뻘 무희는 내 눈물샘을 자극시킨다. 플라멩고는 사랑의 슬픔과 한이 서려있어서인지 그녀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에서 아픔이 뚝뚝 떨어진다. 그녀에 질세라 할아버지 집시 보컬의 통곡 같은 노래와 박수는 내 심장을 마구 때린다. 세 명은 곧 하나가 되어 이 작은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을 플라멩고라는 롤러코스터에 태워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렸다.

공연이 끝나고 땀에 흠뻑 젖은 무대 위의 그들처럼 나도 흠뻑 젖어 버렸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이적 선배님의 ‘무대’라는 곡의 가사가 떠올랐다.
“후한 손뼉에 나는 눈물을 흘리다 쓰러질 것만 같지만”
지구 어느 한구석 손바닥만 한 내 세상 위에서, 사랑을 떠나보내 슬픔에 빠진 사나이마냥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온다. 이억만리 너머에서 이름 모를 집시 뮤지션들에게 영혼을 탈탈 털린 채로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각오와 함께 잠이 든다.
 

Day 9

세비야 대성당 Catedral de Se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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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비야 대성당에 가보기로 한다. 세비야 대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딕건축물이다. 그리고 무슬림들이 이 지역을 통치하던 시기에 지어진 흔적도 있기에 상당히 다채로운 양식을 띄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성가족 성당이 근현대 스페인 건축을 꽃피우고 있다면 이곳은 오래된 스페인의 황금기를 간직하고 있다.

어제 오늘 지나치며 봤던 성당 외부처럼 내부 역시 웅장함에 압도될 정도다. 어두운 실내로 들어서면 묘한 앰비언스와 함께 엄숙함이 느껴진다. 규모도 규모지만 많은 장식들이 나무로 되어있는 부분도 한몫하는 것 같다. 한편으론, 이 오래된 장식을 수세기동안 잘 보존하고 있는 이들의 노력에 감탄한다.

성 안에는 성당의 규모만큼이나 방대한 문화재가 있다. 그래서 세비야 대성당을 보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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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98m의 높이를 자랑하는 히랄다Giralda라는 종탑에 오를 수 있다. 히랄다에서 바라보는 세비야 시내 전경은 무척이나 낭만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단, 걸어서 올라가야만 한다. 수많은 생존의 고비를 넘긴 프로 산악인의 자세로 한걸음씩 내디뎌 종탑의 꼭대기에 오른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댕~

오공이가 삼장법사의 주문을 듣는 것처럼 귀를 막으며 아름다운 세비야 구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탑 위에서 바라보는 세비야 대성당 또한 아름답기에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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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비례할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이니 유의하시길. 그렇게 전망과 인파를 만끽하고 관람 종료 시각인 6시가 돼서야 성당을 빠져나온다.
 
 
세비야의 야경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세비야의 야경을 감상하려고 한다. 세비야 역시 바르셀로나 못지 않은 아름다운 야경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과 세비야 대성당 주위가 유명한데, 곳곳에 비치된 조명이 오래된 돌담을 따듯하게 감싸고 있다. 우연히 걷다보니 알게 된 장소도 있다. 과달키비르 강Rio Guadalquivir이다. 한강처럼 과달키비르강 역시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가장자리에는 산책로와 자전거 길 등이 조성되어 있다. 역시 따듯한 조명이 유럽의 정취를 전한다. 오늘 밤은 이곳에 앉아 야경을 감상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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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비추는 조명도, 간판과 건물을 밝히는 조명도 모두 은은하다. 가능한 자극적이지 않고 우아하게 자신들의 전통을 한껏 살리는 느낌이다. 형형색색 번쩍이는 LED 조명으로 얼룩져진 서울의 야경과 대조된다.

강둑에 앉아 은은한 조명이 밝히는 강 너머를 바라본다. 마침 이어폰으로는 Bill Evans의 음악이 흐른다. 그는 우아한 손짓으로 데비Debby를 위한 왈츠를 연주한다. 물결 따라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그의 피아노도 흘러가고 있다.

Day 10

오늘은 무척이나 낭만적인 세비야를 떠나는 날이다. 론다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엊그제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 ‘아 여기다!’할 정도로 세비야는 내가 찾던 모습을 가진 도시였다. 따뜻한 날씨와 광장을 천천히 가로지는 트램과 마차, 카페 테라스에 앉아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이 도시의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 봤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자동차가 없다’라는 것. 세비야 구도심 중심부에는 차가 다니는 도로가 많지 않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 등을 이용하고 조금 먼 거리는 트램(전차)을 탄다. 따라서 모르는 사람과도 스치며 인사하게 되고 자연스레 소통이 진행된다. 한편 우리는 더 많은 자동차들이 다니기 위해 도심을 가르는 큰길을 낸다. 소음과 먼지 속에서 여유란 찾기 힘들다. 다들 자신의 목적지에 빠르게 도달하길 원할 뿐이다.
 
 
론다Ronda

깎아지는 협곡위에 자리 잡은 론다는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해진 도시다. 많은 관광객들이 절벽 위를 연결하는 누에보다리Puente Nuevo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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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산길을 2시간여 달려서 론다에 도착한다. 론다는 협곡 위에 위치한 도시인만큼 지리적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에서는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을 축복해 주기라도 하듯이 거리 뮤지션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하프와 클래식 기타의 선율은 이곳 날씨와 전망만큼이나 평화롭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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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버스를 타고 오며 예약한 숙소로 가서 짐을 푼다. 대부분의 호텔이 전망대 근처에 있기도 하고 걸어서도 어디든 금방 갈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한 도시다. 전망대를 따라 걷다보면 누에보 다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까지 연결된다. 많은 여행객들이 엄청난 규모의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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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를 둘러싼 산들을 바라보며 내일과 모레, 가까운 산을 오를 계획을 짜 본다. 이곳을 찾은 목적이기도 하다. 이틀간의 짧은 산행에 대비하여 혹시라도 근처에 캠핑 용품점이 없는지 검색해 봤다. 바르셀로나에서 실패했던 캠핑용 가스를 다시 한 번 구입하려는 계략이다. 마침 근처에 아늑한 등산 용품점이 있다.

바르셀로나의 거대한 아웃도어 매장은 아니지만, 왠지 이곳은 느낌이 좋다. 매장을 두리번거리던 내게 성품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무엇을 찾는지 물어보신다. 그리고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캠핑용 가스를 진열장 깊숙한 곳에서 꺼내 주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운트가 가능한지 물어보고 장착해 본다. 오케이!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내일 론다 근교의 산을 격파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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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을 얻기 위해 스페인 전역을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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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격파할 산은 바로 저곳!
 
전망대에서 울려 퍼지는 하프 선율만큼이나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함께 이 석양을 본다면 오랜 시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만큼 론다의 노을이란 연인들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지녔다.

역시 분노에 찬 상태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지만 늘 분노에 차 있는 것만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시길.)

출출했던 터라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향한다. 뜨끈한 국물이 당겨서 토마토 스프를 주문했건만 웬걸, 차가운 토마토 스프(가스파초)였다. 맙소사. 절망하며 빵을 흥건하게 찍어서 입에 넣었는데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묘하게 황홀한 맛이다. 이것과 해산물 빠에야로 오늘 저녁은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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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1

시에라 데 라스 니브스 Sierra de las Nieves Natur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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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를 산은 시에라 데 라스 니브스Sierra de las Nieves Natural Park로, 론다에서 30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론다를 둘러싼 수많은 산 중에 그나마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 선택했다. 사실 어제 하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산들 중에 가장 장엄해 보이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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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내일 이 산을 넘고 남부 해변이 맞닿아있는 Marbella라는 도시로 들어갈까 잠깐 생각했지만, 50km 이상의 거리가 부담스럽다. 결국 다시 론다로 돌아와서 내일은 말라가Malaga행 버스를 타기로 한다. 여하튼 아침 일찍 출발하면 대충 해가 떨어지기 전엔 정상에 도착할 것 같다. 그리고 해가 지면 산을 내려와 야영을 할 계획으로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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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날씨라면 우리의 산들은 이미 블링블링한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점령당했겠지만, 이곳은 매우 한적하다. 풀을 뜯는 엄청난 크기의 황소와 말과 종종 마주칠 뿐이다. 덕분에 약 4회에 걸쳐 질퍽한 소똥과 말똥 지뢰를 선물받기도 했다. 길을 점령한 동글동글한 염소똥 역시 나를 반겨줬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곳 생태계는 초식 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적당한 낮은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환경학 석사와 자연생태복원기사의 시각에서 단정 짓는다. 하지만 똥의 수와 그것들이 퇴비화 되는 속도를 보아서는 방목되고 있는 염소의 개체수가 이곳의 정화수용능력 이상이지 않나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가끔 한국의 섬을 여행하다 보면 인간이 방목한 염소의 개체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것을 종종 보곤 한다. 염소들이 식생을 모조리 먹어치워 결국 그 지역의 생태계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렇듯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상호작용을 한다. 그 어떤 미물이라도 자연에 하찮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에 저지른 실수는 우리에게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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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쌀쌀해지고 수많은 독수리 무리의 선회가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자 저만치 눈썹달이 빼꼼 모습을 내민다.

해가 떨어지려면 대충 1시간 정도 남은 상황에서 정상에 다다른다. 산을 오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상에 통신장비가 설치되어 있는지 이를 관리하기 위한 도로가 나있었기 때문이다.

정상 근처에서 인생 사진 몇방을 찍고 내려온다. 마음 같아서는 어서 빨리 이 근처 전망 좋은 곳에 텐트를 치고 노을을 감상하고 싶지만, 이 산은 국립공원이다. 산을 오르는 중간에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표지판을 봤기에 일단은 벗어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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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지를 물색하는 도중 한 가지 난제가 발생했는데, 바로 아까 언급했던 염소똥의 습격이다. 전망이 좋은 곳은 염소똥 폭탄을 맞았다. 그들도 나처럼 산 정경을 감상하는 취미를 가졌나 보다. 전망을 포기하고 들판으로 내려가서 텐트를 칠까? 고민해 봤지만, 해가 이미 저물어 랜턴을 켜야 할 지경이었기에 질끈 눈을 감고 등산화로 염소똥을 마구 해체시킨다.

시몬스 이상으로 포근한 염소똥 위에 누워서 텐트 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챙겨 온 맥주 한 캔과 어제 숙소에서 먹다 남은 ‘개미 눈물만큼’의 와인을 마시며 우주가 펼치는 영화를 감상한다. 하늘 전체 크기의 거대한 스크린이 용산 아이맥스 영화관보다 웅장하게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권순관 1집의 ‘별’을 들으며 그것을 바라본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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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페이퍼 / 글, 사진_정욱재 편집_진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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