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a-2017

01. 음악가의 연인
02. 파탈리테
03. 촛농의 노래
04. 요람의 노래
05. 아라리
06. 오스카 (Lullaby Ver.)
07. 음악가의 연인 (Inst.)
08. 파탈리테 (Inst.)
09. 촛농의 노래 (Inst.)
10. 요람의 노래 (Inst.)
11. 아라리 (Inst.)
12. 오스카 (Lullaby Ver.) (Inst.)
 
2017년 5월 26일 발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마술 같은 노래들!
심규선의 New EP, [환상소곡집 op.1]

 
늦봄과 초여름의 한가운데, 나른한 대기를 헤치며 그녀가 돌아왔다.

환상 속의 한 장면 같은 조각들로 이어져있는 New EP, [환상소곡집 op.1].

소곡집의 형식으로 6개의 환상곡을 모은 이번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적 사고에 몰두한 노력이 도처에서 역력히 드러나 보인다. 문장의 서두에서부터 말미에 이르기까지 그녀 자신만의 색채로 부단히 그려 넣은 이번 작품은 새벽에 내리는 비처럼 마른 나날에 생기를 더해주며 듣는 이들의 귓가를 적셔온다.

그동안 오필리아, 달과 6펜스, 느와르 등 매니아층의 굳건한 지지를 얻으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 심규선의 환상곡들.

리스너들은 그녀의 노래를 일컬어 ‘한 편의 시’라 평하며 찬사와 박수를 보내왔다. 그러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녀는 미 발매된 환상곡만을 모은 스페셜 음반을 공공연히 약속해왔으며 이제 6곡의 아름다운 환상을 소곡집의 형태로 발매하며 1년여 만에 그 약속을 지켰다.

전달하려는 바를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코러스를 완전히 배제한 채 목소리만으로 겸허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가의 연인’. 하프와 현악기들, 특히 첼로의 선율이 그 곁을 같이 하며 연인의 헌신과 감사에 대해 절제된 톤으로 이야기한다. 강요되지 않았으나 서서히 젖어들 듯 뭉근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은 그녀가 가진 특징 중에 하나라 말해도 이제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소중한 사람’과 ‘한 사람’, ‘그대가 웃는데’로 이어져 온 1번 트랙의 맥을 또 한 번 지켜가며 오랜 연인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노래로, 또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대신 표현해주는 연서가 되어줄 것이다.

12일 미리 선공개되어 팬들의 기대와 기다림을 재확인시켜준 ‘파탈리테’는 프랑스어로 운명과 숙명, 필연성을 뜻하는 french title로 마치 노란색 술이 달린 붉은 빌로드 커튼처럼 눈앞에서 걷혀져 오른다. 특유의 시적 언어와 선율을 합일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마음껏 드러낸 곡으로, 끝을 종잡을 수 없는 한 편의 연극처럼 진행되며 비장감 있는 아코디언 연주가 목소리 사이사이를 드나든다. 도약하는 작은 새처럼 자유로운 편곡이 노래의 순간순간을 파노라마처럼 종횡무진한다.

타이틀곡인 ‘촛농의 노래’는 각 소절의 가사와 전체의 메시지가 서로를 관통하며 능숙하게 어우러진 곡으로, 심규선의 작가적 재능이 꽃 피고 있음을 곳곳에서 증명한다. 어떤 풍부함과 단정 짓기 어려운 색채가 존재하는 이 노래는 음악이 가진 묘한 힘을 또 한번 듣는 이들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시킨다. ‘사람의 마음은 촛농처럼 가장 뜨거울 때 녹아진다’는 그녀의 비유는, 듣는 이를 음악적 표현과 문학적 표현이 맞닿는 한 접점으로 데려가며 격정을 더한다. 마치 이야기의 플롯처럼 자연스레 곡을 따라가며, 듣는 사람 개개인의 환상으로 이끌게끔 장치되어 있는 듯하다.

쓸쓸한 허밍으로 이어지는 극의 막은 ‘요람의 노래’에서 더욱 활짝 열리며 ‘사랑 없인 지옥’이라는 비극적 메시지를 아로새긴다. 실제로 파리를 여행할 당시 센 강변에서 마주쳤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보고 지어진 곡이라는 이 노래는 이국적인 풍경을 연상시키며 한 여인의 신비롭고도 구슬픈 사연을 상상케한다. 플룻과 기타, 아코디언의 결이 노래의 날을 세우고 펼쳐 보이기를 반복하며 시종일관 드라마틱함을 더한다. 마치 물감을 머금은 붓이 지나간 자국처럼 듣는 내내 머릿속에서 미장센을 그려낸다.

이어지는 ‘환상소곡집 op.1’의 무대는’아라리’의 동양적 선율로 애처롭게 마무리된다. 그녀가 음악으로써 줄곧 드러내려 했다는 ‘깨끗한 슬픔’은 크고 잔잔한 물처럼 출렁이며 내면을 무겁게 흔든다. 한국적인 한의 정서를 표현해낸 청아한 아이리시 휘슬 소리는 임을 고개 너머로 떠나보내듯이 곡 전체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가볍고도 존재감 있게 내려앉는다. 한숨과 울음을 내포한 그녀의 목소리는 극도로 유려하게 표현되어 애달픈 헤어짐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조차도 먹먹한 슬픔에 잠겨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기교 없이 나직하게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오스카’는 lullaby ver. 이라는 제목답게 꾸미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로 다가온다. 기타와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는 아늑한 밤 누군가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듯 목소리와 톤을 맞추며 묘한 밸런스를 이룬다. 서늘함과 따뜻함, 서글픔과 장난스러움이 공존하는 이 곡은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사랑스럽게 언어유희한다. ‘꽃 그늘’에서 히든트랙으로 삽입되었던 이 곡은 이제 새롭게 녹음되어 시디가 아닌 음원으로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작품 번호의 뜻으로 사용되는 op (opus)를 타이틀에 굳이 매긴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언젠가 환상소곡집 op.2를 내고 싶어질 것 같아 서라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Light & Shade chapter.1, 2와 매년 부지런히 이어져 온 그녀의 앨범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시리즈 음반들은 각각의 특성과 고유한 연결성을 가지며 중독적인 면모를 과시해왔다. 아낌없이 ‘낭비’ 해달라던 예전 앨범의 소개말처럼, 그녀는 벌써 새로운 구상을 시작했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이 음반을 들으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굴처럼 그녀가 만든 환상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녀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깊이감은, 그냥저냥 귀를 스쳐 지나가는 일상 속 배경음악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부르는 이만큼이나 온 힘을 다해 들어야 하는 음악이 될 것이다. 아마 이 여성 작가의 샘은 쉽게 마르지 않을 것 같다. 노래들은 계속해서 솟아 나올 것이고, 도래하는 계절마다 새로운 가삿말이 들려올 것이다. 그녀의 현재보다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며, 이 보석 같은 노래들을 아낌없이 낭비하고 만끽해두어도 좋겠다. 음미하시라.